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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포은의 절개를 높이 평가하여 그의 아들 정종린을 등용했고, 포은의 충절을 기려 문충이라는 시호를 내렸어요. 정포은은 성리학의 이념을 실천적으로 구현하고자 했으며, 그의 철학은 단순한 학문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윤리·도덕의 실천적 기반으로 작용 했어요. 특히 백성을 위한 정치, 왕도 정치의 실현, 신하의 충절을 강조 했고 고려 왕조에 대한 충성과 나라에 대한 절개를 지켰다는 점에서 후대에 큰 귀감이 되었어요. 그는 도학 정치의 기틀을 마련하고, 절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대표적 인물로 꼽히며, 그의 행적은 후일 조선 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어요. 문학에서도 뛰어나 수많은 시문을 남겼으며, 그의 시에는 현실 정치에 대한 통찰과 충절, 자아 성찰 등이 있었어요 . 대표 작품인 「죽계별곡」에서는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 은둔하며 도를 지키고자 하는 포은의 도가적 성향과 절의가 엿 보이곤 해요. 또한 「포은집」 등의 문집을 통해 성리학적 사유, 역사 인식, 정치적 고뇌 등이 집약되어 있는데 이는 후대 유학자들의 교본이 되었어요. 그의 사상은 후일 사림파에 의해 계승되었고, 16세기에는 조광조, 이황 등에게 정신적 지주로서 존숭 되었어요. 안동의 도산서원 등에는 정몽주의 절개와 함께 포은의 충절이 함께 기려지며, 퇴계 이황은 포은을 도의의 길을 지킨 성현으로 평가 했어요.